#화합물합성 #개구리해방군 #Assisi #연주여행
교수님의 관심사와 진행중인 연구에 대해서 대략적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기초화학 분야에 충실하면서도 의약품 합성이나 재료 등의 응용 분야에서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유용한 저분자 화합물을 합성하는 새로운 합성법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화합물을 합성하는 방법은 전 세계의 합성 연구실의 수만큼 다양한데, 저희는 촉매 반응을 기본으로 하되,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방식, 독성이 강한 시약이나 촉매의 사용을 최대한 배제하는 합성법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햇빛과 같은 가시광 영역의 빛을 반응에 이용하거나, 공기 중의 산소를 이용하여 산화반응을 개발한다든가 하는 것입니다.
현재 운영중인 연구실 그룹과 그룹이 함께 즐겨하는 활동 등을 소개해 주세요.
저희 랩은 외국인과 한국인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는 인터내셔널한 랩이에요. 그래서, 각자의 종교와 문화를 최대한 존중해주는 실험실 문화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다 보니,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일률적인 그룹 활동 등에는 제한이 있습니다만, 최근에는 MZ 세대 학생들이 개인 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연구 공동체 생활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정기적으로는 대한화학회 등과 같은 학회를 같이 참석함으로써, 학생들에게 동기부여와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합니다. 학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그룹미팅을 통해 연구에 대해 자유롭게 토의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랩 문화
연구 활동을 하면서 느낀 자부심이나 보람 혹은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반응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은 연구자로서 매우 놀랍고 감사한 경험입니다. 마치 아직 그려지지 않은 새로운 지도의 한 점을 그려 나가고 있는 느낌이거든요. 물론, 신대륙을 완성해갈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무인도의 한 점을 그려가고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신대륙이나 무인도의 가치를 인간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은 너무 근시안적이죠. 그래서 우리 학생들에게 종종 이야기하곤 합니다. 저널의 IF 도 중요하겠지만, 연구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사후에도 우리 후대들이 찾아서 이용할 수 있는 반응을 개발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요. 학생들에게 멀리 바라볼 것과, 순수 유기화학을 연구하고 있음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라는 이야기를 해주곤 합니다.
영향을 받은 연구자나 가장 큰 울림을 준 과학자는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은 박사 지도교수이신 벤자민 리스트 (Benjamin List) 교수님 이십니다. 2021년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하시기도 했죠. 제가 리스트 그룹의 한국인 1호 박사인데, 박사 과정동안 연구 뿐 아니라 과학자가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 등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아요. 지도교수님은 연구자로서의 자존심도 높으셨지만, 도전적인 연구를 포기하지 않도록 학생들을 이끌고 가는 카리스마가 대단하신 분이셨어요. 연구를 하면서 어려운 문제를 마주할 때 ‘지도교수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대학원생 시절 그룹여행 중, 지도교수인 Benjamin List 교수와 함께
학창시절 교수님은 어떤 학생이셨나요?
집과 학교 밖에 모르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는 모범적이지만 수동적인 학생이었는데요. 대학에 가면서 공부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어요. 전공과목들이 너무 재미있어서 수업이 끝나면 다른 참고 자료를 찾아서 공부하기 위해 항상 도서관에 갈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너무 답답하게 산 것 같아 후회가 많이 됩니다. (웃음)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인데 다양한 교외 활동을 했더라면 인생이 더 풍요롭지 않았을까요? (웃음)
만일 과학자가 되지 않으셨다면요?
아마도 수의사가 되었을 거 같아요. 제가 강아지를 비롯해서 동물을 많이 좋아하거든요. 초등학교 때 해부실습을 위해 선생님이 준비해 놓은 개구리들을 몰래 풀어줘서 수업을 못한 적도 있었어요. 또 다른 해보고 싶은 직업은 전문 연주자에요. 음대에 가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중학교 때까지 바이올린을 열심히 공부했는데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서 그만 둔 적이 있거든요. 신께서 저에게 음악적인 재능을 주신다면, 힐러리 한 (Hilary Hahn) 과 루돌프 부흐빈더 (Rudolf Buchbinder) 가 저의 최애 연주자들인데, 이들처럼 치열하게 음악을 연구하고 자유롭게 연주 여행을 다녀보고도 싶네요.
연구자로서 장기적인 목표와 계획은 무엇인지요?
좋은 반응을 개발하는 유기화학자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반응이란, 저희 세대가 끝나고 후대에서도 계속 인용되고 사용되는 반응이에요. 그러려면 학문적으로 의미가 있으면서도 환경을 생각하고, 안전하고 유용한 반응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저명한 저널에 투고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를 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고 개인적으로 명예로운 일이겠지만, 그보다는 제 신념을 바탕으로 유기화학자로서의 기본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싶습니다.
스트레스 해소나 재충전을 위한 취미 활동이 있으신가요?
긍정적인 스트레스는 일상에 활력을 주지만, 저의 경우,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느껴지면, 일단 하던 일을 멈추고 의식적으로 관련된 상황, 고민들을 나와 분리시키려고 노력합니다. 무념무상으로 걷는 것 (멍 때리며 걷기!)을 좋아하고요. 특히, 자연 속에서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름다운 강가나 숲길을 걷고 있노라면 치유받는 기분이 들거든요. 평소에는 학교나 집 주변의 산책로를 걷습니다. 여건이 안될 때는 주로 음악을 듣는 편이에요. 바흐와 모차르트의 음악을 가장 좋아하지만,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을 때에는 아이유나 다빈크, BTS 등의 가요도 듣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이탈리아의 작은 시골마을 아시시 (Assisi) 에요. 이 곳은 제가 독일에서 박사공부를 할 때 힘들 때마다 찾아가던 곳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프란치스코 성인 (가톨릭 성인)의 마을이기도 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동물의 수호 성인이기도 한데, 실제로 아시시에 가면 성지순례(!) 온 강아지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요. (웃음) 강아지가 큰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건강해져서 감사한 마음으로 왔다는 가족들도 기억나네요. 아시시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전경과 함께, 동물을 사랑하셨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해서, 저에게는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중한 곳입니다.
평화로운 아시시의 전경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 성당과 그곳에서 만난 리트리버
무인도에 가져갈 한권의 책이 있다면요?
무인도에서 생존에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가지고 갈 것 같아요. 청소년 시기에 법정스님의 책과 함께 제 인생관에 큰 영향을 미친 책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무인도에서 삶의 본질에 대해 여유 있게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두께도 적당해서 시간을 보내기에 무료하지 않을 것 같고요. (웃음) 반면, 무인도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성경책을 챙길 것 같아요. 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생을 마감할 때라고 생각하는데, 불안에 떨며 죽음을 맞이하기보다는, 성서를 읽으면서 마음의 위안과 지혜를 얻고 그 힘으로 살아 돌아올 방법을 찾아볼 것 같아요.
멘토나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신뢰라고 생각합니다. 리더로서 문제 해결능력에 대한 신뢰, 그리고 인격적인 신뢰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리더에 대한 확신없이 팀원들이 협조하거나 따라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또한,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리더라도 인격적인 신뢰가 없다면 그 관계는 일회적이거나 단기적인 관계에 그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자를 꿈꾸는 대학원생들이나 신진연구자들에게 힘이 되어줄 한마디를 부탁드립니다.
학생들을 상담하다 보면,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어떤 직업을 얻기 위해, 최연소 박사가 되기 위해 등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공부하려고 합니다. 이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학생들에게 학문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열정 자체를 즐기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모든 것이 구체적이고 목표지향적인 이 세상에서, 때로는 가장 단순하고 근본적인 대답이 우리를 가장 확실하게, 그리고 멀리 이끌어줄 거라고 믿거든요. 덧붙여, 순수 학문을 공부하는 화학자로서 항상 자부심을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EDUCATION & POSITION
PUBLICATIONS
1. Bhat, V. S.; Lee, A.* “Catalyst-Free, One-Pot, Three-Component Synthesis of 3-Arylsulfonylated Thioflavones” Adv. Synth. Catal. 2022, 364, 3088-3093.
2. Aganda, K. C.; Lee, A.* “Synthesis of Selenaheterocycles via Visible-Light-Mediated Radical Cyclization” Adv. Synth. Catal. 2021, 363, 5149-5154.
3. Aganda, K. C.; Lee, A.* “Visible-Light-Promoted Switchable Synthesis of C-3-Functionalized Quinoxalin-2(1H)-ones” Adv. Synth. Catal. 2021, 363, 1443-1448.
4. Hong, B.; Aganda, K. C.; Lee, A.* “Oxidative C−S Bond Cleavage of Benzyl Thiols Enabled by Visible-Light-Mediated Silver(II) Complexes” Org. Lett. 2020, 22, 4395-4399.
5. Lee, J.; Hong, B.; Lee, A.* “Visible-Light-Promoted, Catalyst-Free Gomberg−Bachmann Reaction: Synthesis of Biaryls” J. Org. Chem. 2019, 84, 9297-9306.
6. Aganda, K. C.; Hong, B.; Lee, A.* “Aerobic α-Oxidation of N-Substituted Tetrahydroisoquinolines to Dihydroisoquinolones via Organo-photocatalysis” Adv. Synth. Catal. 2019, 361, 1124-1129.
7. Kim, D. H.; Lee, J.; Lee, A.* “Visible-light-driven silver-catalyzed one-pot approach: A selective synthesis of diaryl sulfoxides and diaryl sulfones” Org. Lett. 2018, 20, 764-767.
인터뷰 방신희 | 그래픽 방신희 | 제작 최원영
의약품 합성이나 재료 등의 응용 분야에서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유용한 저분자 화합물을 합성하는 새로운 합성법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중인 전북대학교 화학과 이안나 교수님을 만나봅니다.